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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의 과거에서 찾는 경제 이야기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 - 잃어버린 30년

by 이파브르 2023. 4. 13.

1.일본 거품 경제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 나타났던 거품경제를 일컫는다. 이 당시 일본은 비정상적인 자산 가치 상승 현상과 과열된 경제 활동, 무분별한 통화 공급 그리고 신용 팽창을 겪게 되는데, 이후 거품이 붕괴하며 1,500조 엔의 자산이 공중분해 된다.시기는 대개 1986년부터 1991년까지로 보며, 이후 일본은 인구 고령화, 금융시장 부실화, 정부의 미약한 대응, 디플레이션 등 여러 요인과 결합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맞게 된다.

일본의 거리
일본의 거리

1980년대의 일본 경제 상황

197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은 오일쇼크로 인해 침체기를 맞았지만, 소니, 파나소닉, 토요타, 혼다, 캐논과 같은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를 극복하고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차근차근 쌓아 올린 기술력으로 그간의 싸구려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미국과 유럽의 경쟁사들을 고사시키며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오일쇼크를 역이용해서 기존 미국 차보다 기름을 덜 먹는다는 점을 널리 홍보하고 잔고장도 미국 차보다 적었기 때문에 미국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또한 1980년대에 오일 쇼크의 여파가 잦아들었고, 오일쇼크 이래 인위적인 엔저로 일본의 수출이 매년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상승하자 1983년을 기점으로 자산시장이 급속하게 활성화되었다. 그러던 1985년에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올라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하며 성장률이 떨어졌다. 그 결과 1986년에 -0.5%(달러 기준. 엔화 기준은 +2.8%).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성장률이었으며 달러 기준 마이너스 성장이 기록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갑작스러운 무역환경 악화로 인한 경기둔화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라는 정책을 폈다.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은 이때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특히 부동산 시장은 기존의 부동산 불패 신화도 있었기에 더욱 상승했고 이에 따라 기업과 개미들이 재테크로 거금을 벌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혹한 기업과 중장년층이 대박을 꿈꾸며 자산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여기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나서니 투자자들은 이에 호응하여 광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은 다시 1987년 달러기준 +1.6%(엔화기준 4.1%), 1988년 엔화기준 7.1%, 1989년 엔화기준 5.4%, 1990년 엔화기준 5.6%, 1991년 3.3%(엔화기준)까지 성장하기는 했다. 저금리로 시장에 풀린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쏟아졌고, 안 그래도 올랐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자 경기부양책을 펼치던 일본 정부는 자산 가격의 비정상적인 폭등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1989년 3%의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면서 동시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다. 문제는 천천히 올려야 할 금리를 너무 급격히 올려버린 나머지 이전까지 크게 올랐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이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켜서 경제의 경착륙을 불러왔다. 일본은행은 1988년 9월에 2.50%이던 기준금리를 1990년 12월 6.00%까지 올렸다. 즉 2년 3개월 만에 3.50%P나 금리가 폭등한 것. 이에 따라 주식시장이 먼저 고꾸라지고,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일본 거품경제 - < 주식 >

우주 한복판을 날고 있었던 주식 거품은 부동산 거품으로 합리화되었다.

1985년 투자금융 계정의 잔액은 9조엔이었지만, 1989년에는 40조 엔까지 팽창했다. 당시 일본인은 기업의 현금흐름은 신경 쓰지 않고, 재테크로 불어나는 자산만 보고 달려들었다. 이것도 일본 기업을 부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언제든지 흑자도산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PER이 67을 찍었고 전통적인 기업들이 성장주로 과대평가 받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실제로 돈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 수요가 곧 가치가 되는 증권시장이 거품처럼 불어 터져나갔다는 뜻이다.

 

일본 거품경제 - < 부동산 >

우주 한복판을 날고 있었던 주식 거품은 부동산 거품으로 합리화되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토지 가격이 50배 정도 뛰는 동안 소비자 물가 지수는 고작 2배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즉, 땅값의 실질 가치가 25배 급등한 것으로, 이 때문에 일본 사회 전반에 토지 불패 신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당시 일본 부동산 버블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거품이 붙는 속도도 어마어마해서, 도쿄 지가는 1981년부터 버블 붕괴 직전인 1990년까지 5배 이상 폭등했는데 이 중 대부분은 1987년~1988년 1년의 3배 상승분이다. 당시엔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고 이 당시 도쿄 고쿄(황 거) 지가가 캘리포니아주, 캐나다 전체 지가와 맞먹었다. 일본의 부동산 광풍은 해외까지 뻗어나가 미국의 록펠러 센터(미쓰비시가 매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일본인, 미국인 투자자가 파트너십을 체결해 매입)이나 컬럼비아 픽처스(소니가 매입), 유니버설 픽처스(파나소닉이 매입) 등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이 당시 일본 자본의 해외 진출을 두고 치를 떨면서 록펠러 센터가 넘어갈 때쯤 일본이 제2의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특히 록펠러 센터가 미국에 있어 상징성이 큰 건물이었던 만큼 그 소식에 대해 착잡하게 여겼던 미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되려 미국에서 일본이 세계 경제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일본 거품경제의 폭발

1990년 새해 첫날부터 주식에서 지나치게 높은 값으로 거래가 끊기자 가격이 하락하고 매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거품경제 붕괴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연말에는 연초 최고치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IT 버블로 잠깐 주가가 상승하나 싶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IT 거품이 꺼지면서 그 절반으로 급하락. 물가 역시 계속해서 디플레이션을 거듭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구두 개입과 토지구역 감시제도 마련 그리고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1991년까지 버텼지만, 1990년 3월 27일에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대장 대신이 발표한 대출 총량규제로 고꾸라졌다. 대출 총량규제는 쉽게 말하면 총량규제 발표 시점부터 신규 부동산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발표 시점부터 6개월간 전면 금지하고 이후로도 3년간 이전에 200%까지 막 나가던 LTV를 감정평가액의 70%로 제한했다. 버블이 붕괴된 직후 투기업자들과 건설 업계들이 무너졌고, 이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을 떠맡게 되는 여파로 부실화된 금융기관들의 연쇄도산도 이어졌다. 부실채권이 막대해져서 일본 정부에서도 환수를 위한 관련 기구를 설치할 정도였다. 그리고 도미노의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금융기관에 대출했던 일반인들까지 큰 경제적 타격을 입으며, 불황을 맞게 된 기업들은 임금 삭감과 대량의 해고를 동반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렇듯 버블 붕괴는 당시 일본의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으며, 이에 따라 이후로도 수십년간 엔화 기준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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