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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의 과거에서 찾는 경제 이야기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최악의 전쟁 - 2차세계 대전

by 이파브르 2023. 4. 13.

세계의 전쟁 - 2차세계 대전 

2차세계 대전 - 군인
2차세계 대전 군인

1. 2차 세계대전 이란?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의해 발발하여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3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이에 미국과 영국, 소련, 중화민국 국민정부, 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면서 1945년 일본 제국이 항복할 때까지 총 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21년 만에 두 번째로 일어난 세계 대전으로,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2. 2차 세계대전의 서론

제2차 세계 대전은 대체로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이 전쟁에서 공격 측이었던 추축국 진영은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3국이 이끌었으며, 방어와 반격 측이었던 연합국 진영은 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 프랑스 5국이 이끌었다. 애초부터 사실상 연합국에 비해 추축국은 상대적으로 국력이 부족했고 제국주의 열강인 이탈리아 왕국이 생각보다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하면서 추축국은 전쟁 초반부(1939년~1942년 초)의 빠른 승세 이후 정체되었으며, 특히 나치 독일의 성공적이지 못한 소련 침공과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개입이 결정타가 되면서 빠르게 몰락했다.
  • 이탈리아 왕국은 종전보다 2년 앞서 연합국에 항복해 진영을 바꾸었으며 나치 독일은 베를린 전투 이후 아돌프 히틀러가 퓌러붕커에서 권총 자살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하였고, 일본 제국은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소련의 침공까지 겹치자 쇼와 덴노가 옥음 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 이후 추축국의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각각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실시되어 독일과 일본의 전범들을 처벌하였으며 이들 중 핵심적인 범죄자들은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 당하였다.
  •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 일대로 국한된 제1차 세계 대전과 달리 전 세계가 전장이 되었는데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국가까지 개입한 뒤 각자 북아프리카 전선과 아시아-태평양 전선으로 모두 직접적인 전장이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 또한 진주만 공습당한 미국을 제외해도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으며 남아메리카에서는 다수의 병력을 유럽으로 파병한 브라질이 있고, 칠레 역시 미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전함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3. 2차세계대전 연합국

  • 연합국의 수는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추축국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교전했고 이후 상임이사국에 등극한 영국, 소련, 미국, 중화민국 국민정부,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1.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썼다. 타 유럽 국가보다 영국 본토와 영국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 이은 또 다른 괴멸적 전쟁으로 영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특히 핵심 식민지인 인도의 독립으로 대영제국의 세계적 영향력은 크게 저하되었다. 이후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칙에 따른 복지국가론에 따라 국가를 재건하였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 국가 개념이 실현됐다. 또한 이 시기 영국은 더 이상 식민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식민지들을 차례로 독립시켜 대영제국을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이를 영연방이라는 국제기구로 재편했다.
    2. 미국은 타 상임이사국들과는 달리 본토의 피해가 거의 없었기에 비교적 경미한 피해로 냉전기 자유민주주의의 필드이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진짜 초강대국이 되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패망시킨 덕에 미국은 태평양 전역과 서유럽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고 기존 유럽의 열강들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압도적인 생산량과 군사력 그리고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까지 얻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였다.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 세계적인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며 서방 세계의 정치적 지도자로 떠올랐으며, 군사는 물론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헤게모니를 가지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국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입김은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을 제치고 남을 수준으로 어마어마해졌으며 사실상 국제연합을 비롯한 현재의 국제 질서가 정립되었다. 그러나 저 동유럽의 또 다른 초강대국인 소련하고 정치적 대립, 곧 냉전을 시작하였다.
    3. 중화민국은 1,500~2,000만의 사망자가 발생해 소련 다음으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가담과 중일전쟁의 최종 승전을 통해 몰락한 일본 제국을 대체하여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했다. 그러나 겨우내 봉합했던 국공내전이 재발발하였고 끝내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기존의 국민정부가 타이완섬으로 국부 천대하면서 철수하였다. 1949년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나 공산 중국 역시 곧 미국과 소련 양쪽에 밉보여 1970년대까지 고립되었다. 
    4. 프랑스는 위의 4개국에 비해서는 독일에 일찍 점령된 영향으로 전쟁에서의 기여도가 낮다. 전후 전장이 된 국토를 수습하고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비시 프랑스 부역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전범재판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바르샤바와는 다르게 수도 파리를 나치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초토화하는 것을 시민들이 저항하면서 막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의 정치적인 영향력과 소련 견제를 의식한 미국, 영국의 도움 덕분에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는 확보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위신과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겠다는 일념하에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했고, 식민지 정책에서 무리수를 둔 측면이 크다.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전쟁에서 제대로 망신당했고, 식민제국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알제리와 베트남을 침공해 식민지 전쟁을 벌였지만 전쟁들의 실패로 인해 프랑스는 연쇄적인 식민지에서의 독립 요구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5. 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선대 러시아 제국보다 영토가 축소되었던 소련은 승전 이후 과거 상실했던 영토들을 대부분 재점령했다. 발트 3국을 병합했고 동부 폴란드(비아위스토크 지역 제외)와 베 사라 비아를 획득했으며 핀란드로부터도 페첸가, 카렐리야, 살라를 획득했다. 심지어 제정 시절에는 타국의 영토였던 지역들까지 새로이 확보했는데, 커즌선 이동의 구 동부 폴란드에는 동부 갈리치아가 포함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하면서 카르파티아 루테티아를 빼앗았으며, 베 사라 비아를 반환받을 때 북부 부코비나를 함께 획득했는데, 이 지역들은 모두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2,000~2,700만이라는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렇듯 승리의 열매는 달콤했는데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이후 1948년부터 1991년 붕괴 전까지, 소련은 냉전 체제하에서 공산주의 진영의 왕초로서 미국과 대립했다. 비록 2,000~2,700만의 인민들이 죽고 국토가 초토화되었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세계 양대 패권국의 지위였다.
  • 2차 대전의 승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5개국이라 평가받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민국을 대체한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으로서 현재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4. 2차세계대전 추축국

  • 추축국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다. 추축국들은 당시 기준으로도 심각한 만행을 자행했기 때문에 전후 추축국의 기존 정부는 대부분 해체되었는데 특히 추축국의 양대 주도 세력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연합군에 영토 전체가 점령당하여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하였다. 또한 UN의 규칙 중구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 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 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생겼다.
    1. 나치 독일은 1945년 4월 말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카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고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며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고 전쟁을 주도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의 수뇌부들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통해 처단당했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분리되었고 주데텐란트를 비롯한 나치 시기의 점령지는 물론 국토 중앙에 어디를-나이에 선이 그어지며 그 이동에 위치한 동방 영토를 일제히 상실했고 침략전쟁에 대한 반동으로 많은 동부 독일인들이 고향에서 추방당해 다수의 실향민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그나마 남은 국토마저 동서로 분단되어 서쪽에는 독일연방공화국, 동쪽에는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다. 그나마 독일군은 원래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냉전으로 인해 동서독의 군대로 부활했다.
    2. 일본 제국은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1억 옥쇄를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손실이 예상되자 쇼와 덴노의 명의로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후 군부 지도자들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을 통해 처벌받았고 중국과 동남아 내 점령지, 만주국과 몽강국 등 괴뢰국, 남양 군도 등 위임통치령, 관동 주 등 조차지, 톈진과 칭다오 등 조계지, 한반도와 대만 섬 등 식민지(외지), 심지어 본토(내지)의 일부였던 남사할린(일본명 가라후토섬)과 쿠릴 열도(일본명 치시마 열도)까지 전부 영구히 상실했다. 미국이 일본 민심을 고려한 덕택에 천황제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일본군이 해체되어 자위대로 개편되었고 평화헌법과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했으며 화목제를 폐지해야 했다.

5. 2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세 확립

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한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비교적 선악 구도가 명확했고,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전후의 역사와 세계 질서가 완전히 결정되었다.

1941년 미국의 대추 축구 선전 포고 전까지는 영국이 단독으로 대독일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경제적 타격이 컸다. 특히 1940년에는 수도 런던이 대공습을 당하거나 영국의 생명줄인 해상 보급로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는 등 인도라는 거대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생존조차 힘들었을 정도로 휘청였으며, 미국이 참전하면서 숨을 돌렸으나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전쟁을 이끌면서 영국은 미국의 보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2차 대전을 끝으로 대영제국의 패권은 무너졌으며, 서유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다른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도 막대한 전쟁 피해와 두 초강대국의 압박으로 인해 식민지를 청산하고 물러섰으며 이에 따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과거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던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새로 탄생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카이로 선언에서 명시된 대로 광복을 맞이했다. 즉, 이미 1차 대전 이후 쇠퇴하던 제국주의 풍조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완전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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