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 최악의 거품 붕괴의 실태
1. 닷컴버블(IT 버블 )란?
- 미국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1996년과 2000년 사이에서 발생한 광적인 투기/투매 현상. 이 사건으로 인해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943일간 고점 대비 78% 가까이 하락하며 나스닥 역사상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하게 된다. 위키백과에서는 미국식 표현인 닷컴버블이라 쓰지만 제일 많이 쓰는 표준 표현은 IT 버블이다.
2. 거품의 시작
- 1980년대 말에 인터넷이 민수용으로 풀렸고, 1990년대에 인터넷의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에서 첨단주로 인터넷/통신 관련 주가가 주목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갓 태동기를 넘어선 인터넷 산업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초유의 관심이었다. 그들은 인터넷 산업이 기존 산업을 뛰어넘어서 전부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곧이어 시작된 인터넷 사업체들은 막대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대표적으로 코즈모 닷컴, 부 닷컴, 패치 닷컴 등은 수많은 거액의 돈(몇백만 달러)을 모을 수 있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들은 투자자들에게 IT 산업의 대세로 인한 어마어마한 수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그들의 이상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무리 인터넷이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 보급된다 한들, 56K 모뎀이나 케이블 인터넷, ISDN이 주로 보급되었고, ADSL 같은 고속인터넷망은 보급이 잘 안되어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사람들은 장밋빛 미래와 웹이니깐 무언가 더 좋겠다고 기대했지만 사용인구의 대다수가 저속 인터넷을 써야 했던 환경 때문에 웹 서비스는 느리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이는 웹 서비스에 대한 불신감과 반감을 키웠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 상승했지만 이후 버블이 꺼지며 2001년에는 시장이 붕괴하였고, 그로 인해 투자자들은 무려 5조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닷컴기업(Dot-com company)들도 줄줄이 쓰러졌는데 웹 밴(Web van, 1999~2001)이나 빈스 닷컴(beenz.com 1998~2001)이 그 예시이다. 2002년 10월에는 역대 최고치에서 78%나 하락했고, Cisco와 퀄컴은 주가가 86% 하락했다. 지금은 IT 대기업인 아마존은 주가가 2년 동안 무려 95%가 하락했다.
- 세계적인 투자 거물 워런 버핏이 역대 가장 많이 욕을 먹던 시기이기도 했다. 위에 서술된 기술주들이 역대급 상승곡선을 그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시 버핏이 주로 투자하고 있던 다우존스 종목들은 하나같이 주가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핏은 " 썰물이 지면 누가 여태껏 발가벗고 헤엄쳐왔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라는 일침을 날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버블이 터지면서 버핏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었고 당시 버핏을 비판하던 수많은 이들은 일제히 버로우해야 했다.
3. 한국의 IT 버블
- 세계적으로도 닷컴 버블 현상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코스닥 시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IT 버블이 불타올랐다. 바이코리아 펀드, 박현주 펀드 등의 애국 마케팅 자금들까지 겹쳐 급격한 테마주 쏠림현상이 발생한 것이다.이 당시 IT 버블로 급등한 테마주로는 골드뱅크(상장폐지), 장미디어(상장폐지), 드림라인(상장폐지), 매디슨(상장폐지. 삼성그룹에 인수되어 현 삼성메디슨), 하우리(상장폐지), 한국정보통신, 새롬기술(현 솔본),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로커스(상장폐지), KTF(당시 한국통신프리텔, KT에 합병), KTH, SK텔레콤[9], 넷마블(CJ E&M에 합병 후 물적분할. 상장 폐지했다가 2017년에 재상장), 한글과컴퓨터, 인터파크(현 인터파크홀딩스), 다우기술 등이 있으며,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림의 주가가 폭등하기도 하고, 평화은행(상장폐지), 교보증권, 키움증권, 기업은행, SBS(이상 코스피 시장으로 이전) 등도 주가가 폭등했었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당시 테마주들은 당연히 구대장 주라고 불리다가 대부분 상장폐지 당하였으며, 2015년 기준 구대장 주로는 한국정보통신, 카카오, 인터파크홀딩스 정도만 명맥을 이을 뿐이다. 주가 폭등의 전설(이 기간에 무려 100배 가까이 뛰었다)이었던 새롬기술은 추진하던 다이얼패드 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뒤 투자전문회사인 솔본으로 이름이 바뀌고 실적 없는 코스닥 시장에서도 잊힌 주식으로 전락했다.외환위기 당시의 주가 최저점과 IT 버블 당시의 최고점을 비교해보면 코스피는 288P> 1059P(2000년 1월), 코스닥은 60P~281P(2000년 3월)로 오르긴 올랐다. 그러나 주가조작 사건과 유가 급등 등의 악재가 터져 나오면서 2000년 마지막 날에는 코스피가 504P, 코스닥은 5분의 1토막이 난 52P로 마감했다. 이후 코스닥은 100P(현재의 1000P)를 다시 넘을 때까지 21년이나 걸렸으며, 코스피는 5년이 더 흐른 2005년에야 1000P를 돌파한다.
4.닷컴버블의 결과
- 미국은 애플, 아마존닷컴 등 IT 버블 시기에 살아남은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스닥 종합지수 신기록을 연일 경신하는 등 후유증을 거의 극복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테라노스 사건 같은 게 연이어 터지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진리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한국에서도 IT 버블이 꺼지는 걸 막으려고 벤처기업가들이 정치인들에게 로비하는 등 부패상이 드러나 벤처기업에 안 좋은 시선이 늘어났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벤처/중소기업 육성책이 상당수 취소되고 다시 이전 정부가 반복하던 대기업 보호정책으로 회귀하는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미국과 비슷하게 이때 살아남은 몇몇 벤처기업들은 지금 한국의 신산업 분야를 이끄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카카오, 넥슨 등이 대표적인데 광복 직후부터 이어져 오던 끼리끼리 재벌 서열에 주목할만한 금이 간 몇 안 되는 시기였다.한편으로는 두루넷, 천리안, 야후! 등 PC통신 시절의 강자였던 플랫폼들이 이 시절을 계기로 완전히 몰락했다. 특히 두루넷은 이전에는 나스닥 상장까지 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으나 IT 버블의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2003년에 나스닥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당하였으며 야후 역시 IT 버블 이후 계속해서 내림세를 타다가 이후 등장한 구글에 자리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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