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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의 과거에서 찾는 경제 이야기

금본위제의 끝 - 닉슨쇼크

by 이파브르 2023. 4. 11.

닉슨쇼크 - 금본위제의 시대가 끝났다.

닉슨 대통령 - 금본위제도
닉슨 대통령

1. 닉슨쇼크란?

  • 1971년 8월 15일 초반에 생긴 닉슨 쇼크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화폐를 금과 교환할 수 있는 정책인 금본위제도(브레튼우즈체제)를 정지시켜 전 세계적인 시장에 큰 충격과 타격을 주어서 생긴 이름이다.당시 금을 교환해서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달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1971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본위제도(브레튼우즈체제)로 인해 미국 정부는 35달러당 금 1온스를 교환해 주고 있었으며, 당시 미국은 전 세계 70%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2. 닉슨쇼크 사태의 배경 

  •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 우즈에 44개 나라에서 온 대표들이 모여 새로운 통화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논의했고 이에 따라 브레튼 우즈 체제가 생겨났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브레튼 우즈 체제가 환율의 안정을 보장하고, 경쟁적인 평가 절하를 막으며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를 바랐다.1958년부터 브레튼 우즈 체제가 전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각 나라들의 돈은 달러에 고정됐고 금 1온스는 35달러의 고정 환율로 바꿀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의 밖에 있는 달러를 금으로 지지해야 했다.
  •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브레튼 우즈 체제는 초반에는 잘 이루어졌다. 마셜 플랜의 도움으로 일본과 유럽의 나라들은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있었으며,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미국산 제품을 소비하기 위해 달러를 원하고 있었다. 1947년을 기준으로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금보유고 가운데 70%을 가지고 있었고, 브레튼 우즈 체제는 견고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1950년부터 1969년 사이에 서독과 일본이 성장하며 미국이 세계의 경제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에서 27%까지 떨어졌다. 또한 국제수지의 적자와 베트남 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통화 팽창 등으로 달러의 가치는 1960년대 들어서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 1971년 들어서 달러 통화량은 10% 늘었다.1971년 5월에 서독이 마르크를 절상하지 않으며 브레튼 우즈 체제를 떠났으며, 이어 달러의 가치는 마르크 대비 7.5% 하락했다. 8월 5일에 미국 의회는 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평가절하를 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8월 9일에 달러의 가치가 유럽의 통화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자 스위스도 브레튼 우즈 체제를 떠났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해 미국이 브레튼 우즈 체제를 떠나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3. 닉슨쇼크 발생

  • 1971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84%였으며[8] 8월 기준으로 실업율은 6.1%였다. 이러한 문제들에 맞서기 위해 닉슨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아서 F. 번스와 재무부 장관 존 코널리, 재무부의 국제담당재무국장 폴 볼커와 논의를 했다. 닉슨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에 관한 큰 논의가 있었고, 존 코널리의 조언에 크게 의지하던 닉슨은 달러와 금 사이의 태환 제도를 중지함으로써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잠재적인 물가 상승 영향을 억제하기 위해 임금과 가격을 90일동안 동결하고, 달러의 부족을 막고 미국 경제를 안정시키며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수입품에 10%의 수입 과징금을 부과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정부가 임금과 가격을 통제했다. 닉슨은 8월 15일 일요일에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표했다.닉슨이 취한 조치들은 정치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왔다. 연설 하루 뒤인 월요일에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일일 사상 최대 상승폭인 33포인트가 올랐고, 뉴욕 타임스에는 닉슨이 취한 대담함에 망설임 없이 갈채를 보낸다는 사설이 실렸다.12월에는 스미소니언 협정에 따라 G10 통화들의 절상으로 수입 과징금이 철폐됐다. 1973년 3월에는 고정 환율제가 변동 환율제가 됐다.

 

4. 닉슨쇼크의 영향

  • 닉슨 충격의 영향으로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과 변동 환율제의 불안정한 모습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 달러의 가치는 ⅓가량 떨어졌으며 마르크는 1971년 5월에 변동 환율이 된 뒤로 가치가 상당히 올랐다. 또한 일본은행은 엔화의 가치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 시장에 크게 개입해야 했다. 1971년 8월 16일과 8월 17일 사이에 일본은행은 달러의 가치 하락을 막고 엔화와의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13억 달러를 써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대형 개입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엔화 대비 약세를 보였다.
1996년에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닉슨 충격 이후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오늘날의 세계 통화 제도에서 금은 어떠한 특별한 지위도 갖고 있지 않다. 연방준비제도는 달러를 그 어떤 것과도 고정해야할 의무가 없다. 연방준비제도는 적절하다고 여기는 만큼 많이 또는 적게 돈을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자유로운 제도에는 큰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연방준비제도는 실재하거나 임박한 경기 후퇴에 돈을 공급함으로서 대응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자면 그 유동성으로 인해 (검은 목요일이 일으켰던 모든 무서운 것들을 일으킨) 검은 월요일에서 실물 경제의 침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변동 환율 통화는 이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도 갖고 있다. 한 예로, 변동 환율제는 세계 무역상들과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5년동안 달러는 많게는 120엔에서 적게는 80엔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이 변동성의 비용은 (복잡한 금융 시장은 사업체들이 변동성으로 인한 위험을 없앨 수 있게 하는 점도 있어서) 측정하기 어렵지만 상당할 것이다. 더욱이 자산 전문가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는 그들이 동시에 무책임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며,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그들이 그러한 기회를 재빨리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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